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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속죄의 꽃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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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09회 작성일 20-05-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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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년 만에 다시 테네시 땅을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봄철이 되어 파릇하게 자라나는 수목들은 여전했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미시시피 강의 강물도 변함없이 혼탁함을 지닌 채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너무나 빠른 것 같다. 30대 중반에 한인이 3천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에 내려가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었다. 개척 멤버들은 소위 상처로 얼룩진 소수의 무리였다. 3개월 동안 열심히 노력을 해서 창립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다. 막상 창립예배를 드리려고 하니 이웃 교회들로부터 축하는 고사하고 냉대를 받았다. 억지로 한분에게 축사를 부탁했더니 축언의 말 대신에 나를 보고 젊은 당신도 상처를 받고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경고로 창립예배는 끝이 났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성도들뿐만 아니라 나도 벼랑 끝에 같이 서있는 목사로 동질의식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작은 교회 안에 쏟아 부어지고 있었다. 주님의 긍휼이 여기심으로 그 교회를 만 7년 동안 섬겼었다.
그렇게 성장한 교회가 벌써 창립 12주년을 맞이하여 나와 아내를 초청한 것이었다. 아내는 너무나 좋아서 잠을 며칠 동안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로 부담이 돼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왜냐하면 축사(?)하러 초대된 것이 아니고 특별하게도 부흥회강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어 들어간 교회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성전 건축을 하면서 입구에 심어놓았던 Bradford나무들은 엄청나게 자라서 하얀 꽃잎을 날리고 있었고 교회 양쪽 파킹장 입구에 심어놓은 Dogwood나무는 십자가의 꽃들을 피어내고 있었다. 만나고 싶었던 옛 친구(교우)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나 반가웠고 여자 분들은 세월의 흔적을 안 들키려고 화장을 짙게 한 것을 눈치 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주름살 세려고 온 것도 아닌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전에 부흥 집회 때마다 날라 다니던 파리 한 마리가 여전히 날아다니고 있었고 예배시간에 맞추어 들어오는 성도들의 모습과 들어오는 시간 그리고 앉는 자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까.
그러다가 내 눈이 강대상 앞에 있는 강단 꽃에 눈이 가게 되었다. 강대상 앞이 온통 꽃으로 만발하고 있었다. 옆에 계신 담임목사님에게 목사님 무슨 꽃이 부흥집회에 저렇게도 많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 저 꽃은 어느 집사님이 직접 하신 것인데 일명 속죄의 꽃입니다! 아니 속죄의 꽃도 다 있습니까? 그 속죄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실 때에 두 분의 속을 하도 많이 썩여드려서 속죄의 꽃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분에게 너무나 죄송했다. 그분은 내가 축복해야만 했던 아브라함과 같은 복덩이 성도였다. 늘 그렇게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데 그분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니 속죄의 꽃 앞에 서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며칠 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려웠던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나본 성도들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아닌 정말 아름다움을 간직한 영적가족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나흘 동안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앉았다. 이제야 첫 목회의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재 섬기고 본 교회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내 가슴에 들어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주일 강단을 본 교회를 개척하여 십 수 년을 귀한 교회로 키우신 초대목사님을 초청하여 말씀을 전해주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감사가 마음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나 같이 부족하고 아무 것도 아닌 죄인에게 부어주시는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였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려고 활주로를 달리는데 아내는 피곤했는지 어느덧 꿈나라로 빠져 들어갔다. 나도 꿈나라도 빠져들기 전에 본 교회로 가면 마음속에 피어있는 속죄의 꽃을 주님께 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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