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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버들피리"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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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78회 작성일 20-05-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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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피리”
봄철 노회가 마침 샌디에고에서 있어서 그곳을 가게 되었다.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봄기운이 만연해 있었다. 눈앞에 가끔 보였다가 사라지는 바다도 봄의 향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옆에 산들에서는 숨었던 생명들이 대지위로 올라오듯이 초록빛깔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갔는데도 모임이 있는 교회의 성도들이 익숙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른 아침부터 나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교실로 안내를 받아가서 보니 멀리서 오신 노회원들이 몇 분이 계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무심코 테이블 앞에 놓인 꽃 데코레이션을 보게 되었다. 꽃보다는 나뭇가지였다. 나뭇가지에는 금방 터져 나올 것 같은 몽우리들이 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몽우리들은 검고 붉은 색의 솜털들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봄내음을 힘껏 품어내고 있었다. 옆에 계신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저게 무슨 나뭇가지인가요? 봄내음이 가득합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의 말씀이 “저것은 버드나무가지입니다. 저 나뭇가지를 잘라 비틀면 하얀 속대가 나오고 줄기로는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죠, 그 소리가 봄이 오는 첫소리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죠, 저 피리소리가 사람들에게 소생하는 생기를 주었죠.”
그러고 보니 나도 어렸을 때에 버들피리를 불었던 기억이 났다. 물이 오른 버드나무가지를 잘라서 비틀면 껍질과 하얀 속대가 분리되었다. 하얀 속대는 기억에 맛이 달콤했었고 줄기를 피리처럼 입에 물고 불면 노랫가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루라기를 부는 수준은 되었었다. 왜 그랬던지는 몰라도 버들피리를 불면서 강아지처럼 이곳저곳 마냥 다니면서 봄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갑자기 버들피리가 불고 싶어졌다. 봄이 물오른 버드나무처럼 완연히 다가왔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행의 선두주자였던 시티뱅크의 주가가 1불 이하로 폭락했다는 소식도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오늘 신문에는 남가주 어느 목회자 단체에서 한국에 모병원에만 가면 무료진료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최고의 병원과 의료진을 지척에 놔두고도 한국까지 가서 그것도 무료로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이민 목회자의 현실이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래서 피리를 더 불고 싶다. 예수님도 마11장에서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라고 하신 것을 보면 그 당시도 어려운 시대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피리를 불고 싶으셨다. 왜냐면 당신 자신이 세상의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셨기 때문이다.
창26장을 묵상하다가 보니 이삭은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려다가 머문 “그랄”땅에서 같은 해에 농사하여 “백배”의 수확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은 그 땅에 머물면 백배는 고사하고 백번 망해도 할 말이 없는 현실이었다. 더군다나 “사이코 패스”의 기질을 가진 왕이 이삭의 아내를 탐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애굽 행을 포기한 이유가 ‘애굽에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함에 있었다. 나는 거기서 퍼즐을 생각했다. 백배가 숨어있는 퍼즐이었다. 우리는 그 퍼즐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숨어있는지 알지를 못한다. 아는 방법이 이삭에게 있었다. 이삭은 삶의 순간마다 순종하고 또 순종하고 순종하며 살았다. “그랄”에서도 계속 순종하다보니 그 속에 백배의 축복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구나, 나도 내 몫인 순종을 해야겠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버들피리를 불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해야겠다! 삘리리~, 주님이 곧 오십니다, 삘릴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2)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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